현명하고 용감한




현명하고 용감한


정문에는 나오미가 지혜롭게 룻을 인도하여 보아스의 마음을 얻는 장면이 있습니다.

믿음 외에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철저한 준비, 심적 분석, 계획, 아이디어 창출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사용하십시오. 지혜가 있으면 강자라도 어떤 상황도 이겨내고 잘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약점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약한 사람도 잘 살 수 있습니다.

개미는 약한 동물이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번영하는 동물입니다.



사람이 약하다고 해서 생존경쟁에서 진 것은 아니다.

지혜를 사용하면 강자 사이에서 잘 살 수 있습니다.

지혜는 언제 생기나요? 누군가를 더 좋게 만들려고 할 때 발생합니다.

나오미는 룻을 사랑하기 때문에 지혜롭습니다.

요셉이 분별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가 가는 곳마다 그곳 사람들을 축복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요셉으로 말미암아 보디발의 가정과 간수도 복을 받았고 애굽은 7년 기근 때 더욱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링컨이 말했다.

“행복하려면 남을 먼저 행복하게 하라. 행복을 주는 만큼 내가 행복해진다.

” 남을 더 낫게 하려고 노력하는 당신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지혜를 주십니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아버지!
내 주변 사람들이 번영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로부터 혜택을 받기를 바랍니다.

” 맹목적으로 신성한 비전을 향해 움직이는 대신 지능과 창의성이 우선시 될 때 성공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분단으로 싸우면 참된 지혜를 잃고 우리 편을 무조건 선으로 여기고 우리 편을 무조건 악으로 여기게 됩니다.

이러한 분열과 편견 때문에 삶이 파편화되고 사회가 파편화된다.

때때로 올림픽 금메달 경기가 열리면 국가는 하나로 통합되고 양측의 차이는 일시적으로 중단됩니다.

사람의 깊은 내면에는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고자 하는 열정과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 안에 있는 그 마음을 쓰면서 남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면 지혜가 따라오고 행복한 삶이 펼쳐집니다.



<锻炼勇气>

유대인의 고어 제도 하에서 여자의 청하지도 않은 청혼을 받아들인 뒤에도 룻은 이불에 싸인 보아스의 발밑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룻은 당시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겸손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은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첫째로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순종했고, 둘째로 룻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겸손한 룻은 용기를 내어 남자의 담요에 싸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새로운 행복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믿음의 용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고 용기를 내어 동정녀 잉태를 받아 복을 받아 메시아를 낳았습니다.

룻은 담대히 들어가서 보아스의 발 앞에 이불을 깔고 “내 어머니의 말씀대로 하리라”고 말함으로써 메시아의 가문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홍해를 가르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모세가 지팡이를 내밀어 바다를 향하여 손을 내밀어 홍해를 나누었습니다.

바다(출 14:15-16). 하나님의 뜻에 담대히 헌신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은 그러한 용기로 인격의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 용기가 내게 나타나게 하시고, 새 봄의 역사가 내 삶에 나타나게 하소서.


여호수아 1장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는데, 이는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거듭 여호수아에게 담대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역설적으로 여호수아도 마음에 어떤 두려움이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강해도 두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두려움 없이 나아가야 가나안 땅을 얻을 수 있습니다.